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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농산물에 좌절하는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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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농산물에 좌절하는 농민들
  • 청양신문
  • 승인 2000.06.05 00:00
  • 호수 3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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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현장 르뽀 - 심 규 상 대전주재 기자



“야반도주하는 집이 한 두집이 아닙니다”
“인건비도 안나오는데 그럼 어쩝니까?”
박상규씨(45.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는 익을대로 익어 바닥에 떨어져 내린 방울토마토를 가르키며 “왜 제때 따내지 않냐”고 묻자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10㎏ 한박스가 젤 좋은 특등이 오천원에 경매돼요. 그치만 한 박스 따낼려면 인건비 3천원에 박스 한 개에 9백원, 운반비 5백원, 여기다 수수료에 하차비에... 따낼수록 밑지니 내비둘 수밖에요”
2~3만원씩 출하되던 방울토마토가 올들어 5천원대로 폭락하자 농가 곳곳이 박씨처럼 아예 수확을 포기한 채 손을 놓고 있었다.
그래도 수확포기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빚더미에 눌려 급기야 야반도주한 집마저 속출하고 있는 터였다.
“저기 중림이라는 동네 한 아무개라고 32살 먹은 청년이 방울토마토 농사짓다 끝내 3억 부도내고 지난 주에 야반도주 했어요. 거기뿐만이 아니요. 방울토마토만 해서 먹고 사는 부여 세도에 갔드니 야반도주는 예사드라고. 거기는 자살했다는 사람도 여럿 있어요”
이석희씨(41. 논산군 광석면 상동리)는 “나도 용기만 있으면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취재 결과 야반도주한 집은 여러 집 있었으나 자살을 했다는 농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밀어닥친 가격폭락 사태가 시설재배 농가들의 마음을 얼마나 흉흉하게 하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방울토마토는 꼬박 6개월을 키워내요. 11월부터 엄동설한 내내 비싼 기름 때서 키워낸단 말입니다. 따져보니 한 박스당 인건비 빼고 생산비가 1만 5천원정도 들어요. 근데 좋은 놈이 5천원에 나가니... ”
한숨을 내쉬는 박상규씨는 방울토마토만 4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매년 수천만원씩 시설투자를 하다 보니 쌓인 빚만 1억 4천만원에 이른다.
올 농사에도 5천만원을 투자했는데 이제껏 내다 판 방울토마토 값이 2천3백만원 뿐이다.
돈모아 장가간다고 버티다 노총각이 된 이석희씨는 3년째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지만 사정은 박씨와 매한가지다.
연체된 농협빚을 갚지못해 여기저기 얻어 쓴 사채만 3천만원이 됐다.
“올해는 그렇다치고 내년에는 값아 오를 거라는 희망이 있어야 농사를 질 거 아닙니까? 정부랍시고 하는 짓거리가 소비촉진운동이니... 우리는 망하는 판인데 대책이라고 내놓는 게 이 모양이니.... ”
두 사람의 장탄식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문제는 가격폭락 사태가 방울토마토 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논산 연산면에서 막 수박을 따내는 비닐하우스를 찾아갔다.
수박을 따내던 김선덕씨(34)는 보라는 듯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않았다.
“비닐하우스 4동(1동 1백50여평)에 몽땅 수박을 심었는데 한 동에 1백만원꼴 나와요. 철재 사고 비닐 사는데만 1동당 50만원씩 들었으니 말해 뭣하겠어요. 꼭 올봄에는 벼락맞은 기분입니다.”
김씨는 지난 해에도 수박값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하우스 한동당 3백만원은 나왔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작년보다 절반이상 내려않은 농산물 가격은 사과, 배, 참외, 오이, 포도, 호박, 토마토, 딸기 등 대부분의 작물을 포괄하고 있다.
그중 농민들은 과일값 폭락의 경우 주된 원인이 수입농산물이 늘어난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애새끼나 어른이나 죄다 오렌지에, 칠레산 포도에, 바나나만 찾고 있으니 국산 과일값이 떨어질 밖에요. 일부 언론에서 과잉생산 때문에 값이 폭락했다고 하는데 재배면적은 약간 늘었지만 오히려 생산량은 제작년보다도 적어요”
실제 수입산 오렌지, 포도, 파인애플, 바나나 등 주요 4가지 과일의 수입량은 지난 3월 현재,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배이상 모두 늘어났다.
“원망스러운 건 정부대책입니다. 농민들은 다 죽어나가는 판에 어쩌자고 농산물 수입은 계속 늘리는 거요. 이것저것 해달라고도 안합니다. 그냥 우리꺼 있응께 수입만 좀 자제하라는 거요”
함께 수박 따는 일을 거들던 이재윤씨(32)는 몇번씩 ‘정부의 수입 자제’를 강조했다.
농민들은 또 새 천년의 시작인 올해가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구제역으로 축산농가 난리났죠. 날 가물어 모도 못내는(심는) 곳이 태반 아닙니까? 거기다 과일값은 똥값이요. 그렇다고 뭐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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