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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땀방울이 만든 멜론 맛 ‘꿀맛이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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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땀방울이 만든 멜론 맛 ‘꿀맛이예유’
  • 김홍영 기자
  • 승인 2008.07.21 14:17
  • 호수 7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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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과 주민숙원사업: 장평면 관현리
▲ 마을 감나무 앞에서 자리한 주민들. 사진 맨 왼쪽이 이은호 이장.

“어려서 이 앞의 들을 지나다닐 때는 맨 늪지였어유.”
은산에서 장평면 관현리로 시집온 일흔한살의 한 할머니가 소싯적 관현리 장수평 앞을 오갈 때는 제방둑이 없었던 때로 이렇다할 곡식을 심을만한 땅이 못됐다.
“그때는 보리나 호밀을 심어 먹었지유.”

임숙자(75) 할머니가 이웃마을인 분향리에서 열아홉살에 시집을 와보니 관현리에는 농토가 없어 주민들이 어렵사리 살림을 꾸리고 있었다.
“땅이라고 해야 문전옥답으로 손바닥만한 다랭이 논밖에 없었슈. 그것도 조금 있는 집이나 그렇구. 보리는 징글징글해유.”

관현리 앞 장수평이 군내에서 제일 큰 곡창지대로 이름이 나기까지는 1960년대 제방둑을 막으면서부터다.
“둑 만들고, 경지정리하면서부터 나아지고, 통일벼 나오면서 소출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유.”
주민들의 말을 듣고 장수평을 바라보니 들판의 벼들이 다시 보인다. 국도 39호선을 따라 펼쳐진 장수평은 보리나 밀을 갈던 척박한 땅에서 이제는 청양서 보기 드문 너른 평야를 자랑하며 관현리 주민들에게 풍성함을 가져다주는 곡창지대가 됐다.

▲ 관현리 앞 장수평 멜론 하우스에서 장평 멜론 수확이 시작됐다.
멜론 하우스 가장 많은 마을
마을 앞 표시석 앞에 서면 초록의 융단을 깔아놓은 듯 들판이 펼쳐진다. ‘마을 앞들만 바라봐도 배가 부르다’는 주민들의 말처럼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한여름 들판이다.
그 들판 사이사이로 비닐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이 하우스가 관현리 주민들에게 높은 소득을 가져다주는 장수평의 새로운 주인이다.

한낮 뜨거운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비닐하우스 안. 그동안 하우스에서 땀 흘린 농군의 노고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커다란 멜론이 주렁주렁 열렸다.
“지금부터 멜론을 따기 시작합니다. 파종 시기를 달리해서 11월까지 수확합니다.”
밭에서 일을 하던 한 주민이 맛을 보라며 멜론 한쪽을 잘라 내온다. 한입 베어 문 멜론 맛이 꿀맛이다.
멜론의 대표 산지로서 장평이 이름나게 된 것은 관현리 주민들이 멜론에 쏟은 정성과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장평 일대의 멜론 농사 규모는 37헥타아르. 이 중 농가 수가 12가구로 하우스 면적으로 가장 넓은 마을이 관현리다.

“장평 낙지리에서 멜론이 시작됐는데 우리 마을도 멜론 농사를 하면 괜찮겠다 생각했습니다. 멜론 농가의 수입이 좋아지니 그 뒤로 하우스 하는 농가가 많아졌습니다.”
20여 전에 멜론 농사를 시작한 이은호(45) 이장은 벼농사와 하우스 농사를 하고 있다. 수입구조가 20대 80으로 수익은 좋지만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많단다.

“하우스하면 일년 열두달 일해유. 그리고 지금처럼 제일 뜨거울 때 바빠서 쉬지 못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황인관씨(64)가 ‘그래도 할만하니까 하지’ 하며 젊은이의 엄살에 어린아이를 달래듯 한마디 한다.
“하기 싫으면 못하는데 일이 재밌어유. 눈만 뜨면 들로 나가서 컴컴해야 들어와유.”
“저 집이 알짜로 벌어. 품 안사고, 두 내외가 다 한다니까.”
“그러니까 죽것시유.”

오히려 황씨는 젊은 시절에는 일을 멀리했다. 아이들 결혼하고 두 내외만 남았는데 하우스 일하는 재미가 생기더란다. 황씨 또한 벼농사와 하우스 12동에 수박과 멜론 농사를 짓고 있다. 다른 손 안 빌리고 농사짓기에는 버거운 규모이지만 부부가 품 안사고, 그 많은 일을 다 해낸다.

“이제는 농사짓는 거 인건비 싸움이예유. 농자재값 상승해서 농사 많이 지어도 모두 나가고, 식구들끼리 지을만큼만 짓는 게 남는 것이라까유.”
“제가 처음 멜론 농사 지을 때와 지금과 비교해서 멜론 가격은 변함이 없어요. 그 전에는 멜론 한 상자 팔면 품값, 자재값 제하고 돈이 남았는데 이제는 세 상자 팔아도 비용 제하고 나면 모자랄 지경입니다.”
이런 이유로 멜론 농사를 짓는 관현리 주민들은 품질로 승부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서로 경험과 정보를 나누고, 출하시기도 조절하고, 상품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습니다.”
“작목반을 중심으로 하우스 농사짓는 젊은이들이 좋은 작물 생산하자고 노력 많이 했유. 우리 마을 젊은이들이 일 참 열심히 하지유.”

“주민 단합 척척, 살만한 동네 됐어유”
젊은 사람들 하는 일 모두 쫓아가기 힘들 법도 한데 주민들은 그리 생각지 않는다.
“주민들이 마을 일에 관심이 많아유. 좋다고 생각하면 다 좋은 일이지. 마을 사람들이 해되는 일 하것시유.”
관현리 주민 열명 중 두명 정도가 젊은 사람.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숫자지만 장평에서는 젊은 사람이 많이 사는 마을로 꼽힌다. 이장과 주민들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또 나이든 이는 나이든 이대로 서로 끌고 밀어주는 관현리 주민들의 하나된 마음이 읽어진다.

관현리에는 ‘관현리를 사랑하는 모임’이 있다. 일년에 한번씩 동네에서 고향을 떠난 이들이 고향을 찾아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정을 나누는 모임이다.
“부모가 세상 떠나면 고향 찾아올 일이 있나유. 그래도 고향이라고 찾아오고 참 반갑지유.”

‘관사모’는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고향을 잊지말자는 취지로 만든 출향인사 모임으로 매년 4월 동네 주민이 한자리에 모이는데 올해로 일곱 번째 모임을 가진바 있다.
“동네 사람들 함께 어울려 지난 시절 이야기 하면 참 세월 많이 흘렀구나 감개무량 해질 때가 많아유.”
“보리 탈곡하면 어른들 몰래 한대 갖고 나가 판 돈으로 보리수 사먹고, 복숭아 사먹던 시절 생각나네유.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살기는 좋은 세상이지.”

이야기를 끝낸 주민들은 다시 하우스로, 밭으로 향한다.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랑곳 없이 손 놀리지 않은 수고가 있어 바라만 봐도 배가 불렀던 장수평이 넉넉한 삶을 가져다 준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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