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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듬티 전설 따라 수박 멜론 익어가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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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듬티 전설 따라 수박 멜론 익어가는 마을
  • 청양신문 기자
  • 승인 2008.07.14 14:38
  • 호수 7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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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과 주민숙원사업: 청남면 내직2리
▲ 김태윤씨 부부가 한낮 뜨거운 시간에도 일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렇게 뜨거울 때는 일 못해유. 해 좀 떨어져야지….”
청남면 내직2리 마을회관. 밭에서 일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낮 뜨거운 햇볕을 피해 들어선다.
“지금이 보통 바쁠 땐가. 보리농사 짓고, 모 심자마자 마늘 캐고, 좀 있으면 고추 따야지…. 고추는 끝까지 일거리지 뭐. 밭은 모두 여자 일이여유. 아휴!”

숨을 몰아쉬며 이야기하는 한 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 알 수 있다.
“내직2리는 논보다 밭이 많거든요. 마을이 전부 보리 심고, 양식 삼아 고구마를 많이 심었어유. 방에다 고구마 소쿠리 20~30개 만들어 놓고, 김치 담그면 식구들 양식 다 된 거지유.”

김전응(67) 이장이 예전의 내직2리 살림살이를 이야기하자 열일곱 되던 해 내직2리로 시집을 왔다는 유춘자씨(75)는 금세 밭일하던 새색시 시절로 돌아간다.
“밭농사가 손이 많이 가잖아유. 하루종일 밭에서 살았지 뭐. 여기로 시집 온 여자들은 모두 그리 살았어유. 하지 지날 때쯤이면 풋보리 일일이 펑펑 빻아서 밥 해먹고, 고구마 쪄 먹고 그랬지유.”
주민들의 한 마디 한마디가 이 마을의 고듬티 전설처럼 기자의 마음을 적신다.

▲ 청남면 내직2리 마을회관 앞에 함께한 주민들.
밭작물 품질 좋기로 소문난 마을
주민들 대부분 밭농사를 하다보니 집안 살림이 빠듯했지만 다행스럽게 땅이 좋아 곡식이 해마다 잘됐다.
“고추나 고구마 심으면 맛도 좋고 잘 됐어유. 예전에는 목화도 많이 심었는데 멀리 대천에서 젓갈을 이고 와 목화나 깨, 고추와 바꿔 갔지유.”
유씨 또한 목화 농사를 지었다. 웬만한 밭일 다 해봤지만 목화농사 짓던 시절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이 몇 가지 있다.

“보리 다 까불고 목화농사를 짓는데 영글기 전에 깨물어 먹으면 그것이 달달하니 먹을만 했어유. 딸내미 시집갈 때 목화농사 지은 걸로 솜이불 만들어 주었는데 다른 사람 손 빌려 만들어 보낸 거하고 마음이 다릅디다. 이불하고 남은 것으로 옷 만들어 입으면 또 얼마나 좋았는지. 누에를 쳐 명주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는데 명주옷이 잘 해놓으면 참 이뻐요.”

명주옷 입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 것일까. 유씨의 두 볼에 웃음이 떠오른다.
밭에서 이제야 마늘을 다 캤다며 한 아주머니가 들어선다.
“작년보다 마늘이 못하다고 하던데. 그 집 마늘은 어뗘?”
“아녀, 우리 밭은 지난해보다 낫데.”

그 아주머니는 올해 마늘농사가 잘된 듯싶다. 지난해보다 가격을 더 받을 것 같다.알음알음 아는 사람에게 마늘을 내는데 장에 내다 파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먹을 만하게 농사지어서 아는 이들에게 제값 받고 파는 게 속 편해.”
내직2리 아낙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밭일 도맡아하며 살림을 꾸려온 그녀들의 삶이 녹녹치 않았음이 느껴지지만 왠지 모르게 넉넉한 마음이 함께 든다. 

저수지 생긴 뒤부터 논농사도 풍년
1960년대 들어서면서 내직2리의 살림살이는 김 이장의 표현대로 상당히 좋아졌다.
“마을 앞이 전부 밭이었는데 저수지 막고, 경지정리하면서 논이 생겼지요.”
전설로 전해지는 것처럼 ‘모든 조선사람 사흘 먹을 것이 들어 있다’는 앵봉산 아래 자리한 덕을 본 것일까.
저수지가 생겨 물걱정 없이 벼농사를 짓다보니 동네 살림이 펴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나아진 살림살이를 감사하며 둑방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청양에서 저수지 둑방제 지내는 곳이 별로 없거든요. 우리 마을은 저수지 막고 한결 살기가 나아졌고, 물이 잘 들어서 마을에 풍년들게 해주십사 마을 부녀자들이 둑제를 올리고 있어유.”
정월 보름날, 제방 터지지 않고 한해 농사 잘되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부녀자들이 튼튼한 내직2리의 살림꾼이었다면, 요즈음 내직2리의 새로운 살림꾼으로 이름을 내건 이들이 있다.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는 젊은이들이다.

“여기 젊은 사람들이 10여년 전부터 토마토, 멜론, 수박 하우스를 하고 있어유. 표고버섯 하는 집도 있구유. 나이 많은 이들은 지금 다른 것 하는 거 엄두도 못 내지만 젊은 사람들은 고소득 작물을 짓지유.”
김 이장과 함께 김태윤씨(55)네 하우스를 찾아갔다. 마을에서 다른 이보다 일찍 하우스를 시작했다는 김씨는 토마토를 시작으로 지금은 멜론과 수박 농사를 짓고 있다.
한낮 뜨거운 태양으로 후끈 달아오른 하우스 안, 금방 땀이 흘러내리지만 김씨네 부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지대에 멜론 가지를 묶고 있다.

“새벽에 나오면 멜론 덩굴이 다 자빠져 있어 그거 세우느라고 밤 8시에 들어가요. 뜨거울 때 잠시 빼고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계속 밀려 있네요.”
부인 유성예씨(50)는 ‘농사일로 바뻐 청소할 시간이 없다’며 어수선한 하우스를 보이는 것을 민망해하지만 남편 김씨는 ‘농사철 다 그렇지 뭐’ 하며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다.
“하우스하면 소득이 괜찮다고들 하지요. 값이 좋아서 시절이 좋았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자식들 공부시킬 수 있는 정도에요.”

자식들 공부시키는 것이 돈 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김씨 부부는 짧은 이야기를 마치고는 ‘잘 쉬었다’며 다시 뜨거운 하우스 안으로 들어간다.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아래 앉아보니 마을 앞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뜨거운 햇볕 아래 영글어가는 곡식들. 그것을 키우고 있는 내직2리 살림꾼들을 떠올려본다. 그네들은 온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정자나무 같은 푸진 마음을 갖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지가 흔들리면서 불어오는 바람이 정말 시원하다.

김홍영 기자  khy@cy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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