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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4월은 맥문동 익어가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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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4월은 맥문동 익어가는 시절’
  • 청양신문
  • 승인 2008.04.14 00:00
  • 호수 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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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의 자연마을을 가다: 장평면 화산2리

광산마을에서 맥문동마을로 친환경 변화
“글씨, 그냥 놀게 놔두질 않는다니께유. 일손 딸린다는데 어떡혀유. 죄다 불려나와서 이러구 있씨유. 근디 햇빛 때문에 얼굴 배껴지것씨유.”
어느새 내리쬐는 봄볕이 따가운가 보다. 맥문동을 캐는 아주머니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따갑다고 푸념해도 이웃집 맥문동 수확에 동참한 것이 왠지 싫지 않은 기색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제 할일은 다해야한다는 듯 밭에서 캐낸 맥문동의 흙을 털어내는 손은 쉬지 않는다.
새싹이 움트는 시절이지만 장평면 화산2리(이장 이춘복)는 4월 들어 맥문동 수확이 시작됐다. ‘죄다 나와서’ 일해야 하는 까닭이다.
“캐기 시작한 지 사흘째예유. 그동안은 식구지리 했는데 오늘은 사람들 좀 불렀슈. 저 밑에도 맥문동 밭이 있는데 식구들로는 안돼유. 다 캘러면 한참 걸리것슈.”
밭 주인 현완수씨가 트랙터로 맥문동 밭을 파낸다. 옆에서 뿌리에 달린 맥문동이 상할세라 설겅설겅 쇠스랑으로 골라낸다. 흙을 털어 낸 뿌리에 누르스름한 맥문동이 당알당알 매달려있다.
“올해는 평작 수준밖에 안돼유. 작년 가을에 비가 많이 내린 여파인 것 같아유.” 주인의 말에 옆에서 일하던 이들이 ‘잘될 때는 이렇게 크다’며 손가락 가운데 마디를 가르켰다.

주민 40% 맥문동으로 고소득
화산2리 주민들에게 이제 맥문동은 없어서는 안될 새로운 소득원이 되어가고 있다. 현재 전체 주민 중 약 40% 정도가 맥문동 농사를 짓고 있다.
“화산2리는 원래 농토가 적어서 살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밤나무와 맥문동을 심기 시작했어요.” 이 이장은 장평면에서 밤이나 맥문동을 가장 많이 농사짓는 곳이 화산2리라고 말한다. 그만큼 전에 비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말인가. 맥문동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30여 년 전인 1970년대 후반.
“그 때는 맥문동 하는 집이 몇 집 안됐는데 1근에 2~3만원 정도 받았어요. 가격 참 좋았지요. 지금은 7천원에서 1만원 정도지만 밭작물로 이만한 농산물 없다고 봐요.”
가격이 반 이상 내려갔지만 인건비가 예전에 비해 덜 들어가니 그래도 할만한 농사라는 것이다.

khy@cynews.co.kr
“땅 백 평이든, 이백 평이든 손으로 일일이 다했는디. 시방은 트랙터도 있고, 세척기가 있으니 퇴비만 주면되니까 일손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화산2리의 맥문동을 알리기 위해 맥문동 축제를 열고 있기도 하다.
“한 3년 전부터 맥문동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는 먹는 방법이 약재나 차를 끓여 먹는 등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난 해 처음 열린 맥문동 축제에서는 칼국수, 떡 등 맥문동을 이용한 다양한 먹을거리가 선보여 마을을 찾아온 100여 명의 도시인들은 색다른 맥문동의 맛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른 농작물에 비해 좋은 소득 올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재배 농가가 늘고 있습니다. 청양의 작은 마을에서 나는 맥문동이 청양을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맥문동 축제를 여는 것도 농가의 소득 증대와 더불어 청양을 알리자는 뜻이라는 이 이장. 15일에 열리는 두 번째 맥문동 축제에는 더 많은 방문객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잊지 않는다.

30~40대 귀농하는 청년 늘어
꽃뫼마을로 불리우는 화산2리는 그 이름처럼 봄이 되면 화사한 봄꽃이 많이 피던 마을이었다. “산에 진달래, 벚나무가 많았어요. 이맘때쯤이면 산에 점점이 핀 꽃 색깔이 참으로 고왔지요.”
이 이장과 김기덕 개발위원장이 상지마을 뒷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제는 밤나무가 온 산을 덮고 있지만 아직도 간간이 남아있는 진달래를 만나면 오랜 친구, 길에서 만난 듯 반가워한다.
“이 동굴 안에 박쥐가 서식하고 있어요. 어찌 알았는지 초등학교에서 탐방을 하겠다고 연락이 오는데 사람들이 오갈만큼 준비가 안돼 있어요.”
화산2리는 1970년대 후반까지 중석을 캐내는 광산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 동굴도 폐광으로 마을 주민들은 시설정비를 원하고 있다.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 방문객을 위한 동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기 때문이다.
동굴 앞에 서니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굴 옆으로 난 산에 밤나무를 심었다는 이 이장은 일을 하려고 올라오면 정작 일이 하기 싫어진단다.
“여기 앉아 있으면 마을이 다 보여요. 저쪽 밭고랑에서 누가 일하고 있고, 이쪽 산 밑에서는 누가 뭐하고 있나. 읍내에 가려고 버스 시간 맞추느라 바쁘게 나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잘 닦여진 마을 길 따라 차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오는 것도 보이고. 이것저것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져요.”

이렇게 좋은 고향을 이 이장도 소싯적에 떠난 적이 있었다. 4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이 이장처럼 고향으로 귀농하는 이들이 최근 늘고 있다는 것도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매년 30~40대 층으로 1~2명씩 늘고 있는데 청년회원들만 40여 명이 넘는다. 이런 이유로 김기덕 개발위원장은 ‘화산2리가 살기 좋은 잠재력이 있는 마을’이라고 확신했다.
“중석 광산이 있을 때 광부가 3천여 명이 됐고, 화산초교 학생들이 6백여 명이 넘었어요.” 건너 산자락에 붉게 핀 진달래를 바라보던 김 개발위원장. 무슨 생각으로 그의 나이 10~20대 쯤 전성기를 이루었던 광산 이야기를 했을까. 멀리 아직도 맥문동 수확을 하는 밭이 보인다. 화산2리의 하루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은 양 봄볕은 가시줄 모르고 여전히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김홍영 기자  khy@c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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