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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이 걸려 되찾은 우리의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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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이 걸려 되찾은 우리의 설날’
  • 청양신문
  • 승인 2001.01.22 00:00
  • 호수 3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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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일 청양문화원장

설날은 한 해의 첫날로 첫머리라는 뜻에서 ‘세수(歲首)’ 또는 ‘연수(年首)’라 부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설’이라 부른다. 또 한자로 쓸 때에는 ‘신일(愼日)’이라 쓰는데 이는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가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섣달 그믐밤(除夕)을 마지막으로 묵은 해가 지나가고 설날을 시점으로 새해가 시작되니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던 옛 사람들은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몸가짐으로 벽사초복을 기대하며 연초인 설날에 심신을 근신했다. 또 농사를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 여겨온 우리 한민족은 일년동안 우순풍조를 기원하기도 했다.
우리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음력(陰曆-太陰曆)을 사용해 왔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양력(陽曆-太陽曆)을 만나게 된 것은 1894년(고종 31년) 소위 갑오경장 때 개화당의 김홍집 내각에 의한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1895년 내정개혁안에 따라 양력사용을 결정하고 그해 음력 11월 17일을 양력으로 1896년(건양 1년) 1월1일이라는 고종황제의 칙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력을 태양력으로 바꾸고 연호도 양력을 세운다는 뜻의 건양(建陽)이라 하였다.
외형적으로 보면 이때부터 우리는 양력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모두가 음력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오래 오래 사용해 온 음력을 고수한 것이다.
그후 일제치하에 들면서부터는 더욱 양력을 사용해야 하며 설도 양력설을 쇠어야 한다는 강압적 추진이 있었지만 오랜 전통의 뿌리가 깊은 우리 민족에게는 양력설이 ‘일본설’이라 하여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후 1945년 해방을 맞은 우리민족은 1946년 음력설을 맞아 우리의 설날을 찾았다는 기쁨으로 온 나라가 떠들석 할 정도였다.
그러나 1948년 정부수립 후 신정(양력설)은 일본설이 아닌 우리의 설이라 홍보하여 음력·양력 두 번의 설을 쇠는 이중과세에 따르는 소비풍조 억제 등 실용적 이유를 앞세워 음력설을 강제로 폐지하려 했지만 수십년의 노력에도 역시 대다수의 우리 민족에게는 거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공무원들이나 은행원 등은 당국의 시책에 끌려 외형적으로 신정을 챙기는 것 같았으나 내용적으로는 구정을 버리지 못했고 특히 지방(농촌)에서는 끝내 구정만을 챙겼다.
그러다가 정부는 1985년에 이르러서 ‘민속의 날’이라 하여 우리 민족이 버리지 않은 설날을 공휴일로 정하였다.
이때를 우리 설날이 찾아진 것으로 볼 때 93년만에 정부차원에서의 설날이 챙겨진 것이다.
1985년 ‘민속의 날’이라 하여 챙겨진 것도 그 앞에 10여년의 논쟁을 거친 결과였다. 10년의 논쟁을 통해 음력설은 우리 민족의 버릴 수 없는 민속명절이라는 점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이다.
1983년의 한 여론조사를 보면 설날을 공휴일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86%로 나타나 있으니 설날에 대한 우리민족의 감정을 읽을만하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로서는 2중과세(신정과 구정)를 공식화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데는 여러 가지로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음력 설날을 굳이 ‘민속의 날’이란 어색한 이름으로 부른 것도 그러한 어려움을 반영한 것이라 볼수 있을 것이다.
‘민속의 날’로 정했던 구정은 결국 1989년 ‘설날’이라는 이름을 찾고 또 3일을 쉬는 날로 하였다. 본시 전통과 풍속의 형성이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금방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이고 무너지고를 거듭하는 가운데 비로소 안으로부터 그 깊은 뿌리가 내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동안의 행정력으로 풍속을 바꾸어 보겠다는 것은 착상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 하겠다.
문화(풍속)는 법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896년에 양력을 택하고 또 일제시대 때는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강요받기도 했던 설날이 93년만인 1989년 다시 찾아오자 이날을 맞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최근 설날이나 추석 등 큰 명절 때면 무려 2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향길에 나선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야말로 엄청난 민족의 대이동이 아닌가.
설날이 찾아졌음은 우리의 민속명절을 잊지 않고 떳떳이 쇨 수 있다는데 그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설날이 찾아졌으니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겠다.
이제 이 때를 맞아서 고향을 찾고 멀리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인사(세배)를 드리며 차츰 희박해져 가는 전통의식, 가족의식을 회복하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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