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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봄을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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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봄을 기다리는 마음
  • 청양신문
  • 승인 2001.02.17 00:00
  • 호수 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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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ysw2350@hanmail.net)
청양 장평 출신, 수필가/경찰관
한국문인협회 회원

봄을 기다리는 계절은 2월이 아닌가 한다. 소한, 대한이 들어 있는 1월이 아니라 입춘과 우수가 들어있는 2월의 달력을 보면서 조금은 성급한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게 된다.
봄이 온다고 신이 날 일도 없다. 잔 주름진 아내의 얼굴이 금방 새색시 얼굴처럼 화사해 지는 것도 아니요, 어느 한 가지 내세울 것 없는 소시민에게 당장 더덩실 춤출 일이 벌어질 것도 아닌데 기다려지는 게 봄이다.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을 설렘으로 기다리진 않는다. 빙점의 겨울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은 더구나 없다. 그런데 봄은 누구나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좌판 옆에 연탄 한 장 피워 놓고 겨울을 난 생선장수 아줌마에게도 봄은 기다려지고, 혹한의 골목길을 서성이며 방범 근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기다려지는 게 봄이다.
한두 해 맞이하는 봄도 아닌데 정해 놓은 혼사 날 기다리는 처녀 총각의 설렘처럼 봄을 기다린다. 봄을 기다리는 동심도 있다. 입학을 앞둔 우리 집 막내의 기다림이다.
큰 엄마한테 엊그제 선물 받은 책가방을 거울 앞에서 하루에 열 번쯤 메어 보는 우리 집 아이의 기다림이 3월의 봄이다.
저 천진 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보면, 나는 하루의 피로도 잊고 금방 머리가 맑아짐을 느낀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무미 건조하며 마주치는 도시인들의 감정도 무디기만 하다. 고작 진열장의 상품이나 여인네들의 옷차림에서 봄을 느낀다고 말한다. 어차피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면서 촌놈 티 한 번 내어 보고 싶어진다.
어린 시절, 고향의 봄을 그려보게 되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시골이다.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가래울.
그 작은 마을을 추억하는 건 즐거움이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냇둑에 송아지를 내다 매고, 아직은 시린 냇물에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발을 들여놓으면 놀란 붕어 떼들이 쫘악 흩어진다.
그놈들을 쫓다가 갑자기 발바닥이 간지러움을 느낀다. 꿈틀거리던 모래무지가 어느새 빠져나가 바위틈으로 숨어 버린다. 그럴 즈음, 저만치 자전거를 타고 신작로를 지나던 면(面)서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게! 아직은 발이 좀 시릴 거여! 고기 잡는감?˝
괜스레 멋쩍어진 내가 뒤통수를 만지며 대꾸한다.
“그냥 발 좀 담가 봤어유, 그다지 시린 줄 모르것네요.˝
내 목소릴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난 상관하지 않는다. 노상 바쁘신 면서기 아저씨의 지나가는 인사는 으레 그 정도 받아 주면 되니까….
나는 물에서 나와 송아지 잔등을 한 번 쓸어 주고 들녘을 걸으면서 발 밑에서 움트는 봄 풀꽃들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제비꽃, 패랭이꽃, 씀바귀, 민들레….
겨울을 이겨 낸 그것들의 숨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옴을 느낀다. 머잖아 영숙이네 돌담장에 필 찔레꽃이며, 선자네 남새밭 울타리를 장식하게 될 앵두나무 꽃에도 벌떼들이 잉잉거릴 것이다.
동네 골목 어귀에 서 있는 오동나무도 보라 꽃을 피우게 되겠지. 내 어릴 때 고향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고 싶다. 아직은 차가운 계절 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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