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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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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청양
  • 청양신문
  • 승인 1990.06.14 00:00
  • 호수 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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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민선 축협중앙회장 명의식 씨

"일생을 농촌운동에 바치겠다는"

지역출신 출향인들의 애향심을 되살리고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고장 출신 인사들을 지역민들에게 소개함으로서 고향에 대한 자존심과 긍지를 높이도록 하기위해서 본란을 마련하고 그 첫 번째로, 지난 4월 13일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 초대 민선회장으로 당선, 취임한 명의식회장을 만나 보기로 했다.

․우선, 민선 축협중앙회장에 당선되신걸 청양인의 한사람으로 축하드립니다. 128대 39라는 일방적인 선거 결과는 명회장님의 평소 인기와 신망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데 재임기간중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자 하는 일은?

“먼저 민선중앙회장이기 때문에 축협의 민주화를 추진하는게 제일 큰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제도와 법, 규정등을 개선해야겠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협동조합 체제가 정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향식 조직이었는데 조합의 기본 이념에 맞도록 개혁해 나가는 것이며, 또한 조합원이 주인이 되고 조합원의 권익이 보호되도록 하여 참여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지금 농촌은 도농간의 소득격차와 농업정책의 부재, 문화시설 부족등으로 인한 이농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가고 있는데 이때에 청양의 축산인과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또 청양의 미래 발전방향은 어떻게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농촌의 이농현상은 여러 문제점이 현존하고 있으나 우리 청양은 영세 소농이 많이 때문에 첫째, 농민의 소득이 높아져야 하겠고 주거환경이 개선되어야 겠으며 문화시설 이용이 더욱 용이하도록 되어 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물과 공기가 맑고 산세가 좋은 자연환경을 살려서 지역특성에 알맞은 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농토는 적고 산지가 많으니까 축산업을 진흥시킨다든지 환경오염이 없는 무공해 공장 등을 유치한다든지 …

고향의 젊은이들은 절대 좌절감을 갖지말고 내고향은 청양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요사이 많은 고향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평소 가정에서 가훈처럼 자제분들에게 이르시는 말은 없으신지?

“지금 바로 막 나아가라. 늦어진대 대한 변명은 흥미없다. 나의 이상은 오직 하나 성취하는 것이다 라고 아이들에게 자주 일러 주곤 합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어릴 때 고향에 대한 추억이라도?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때는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농촌의 상록수가 되어보겠다는 생각에 그저 책하고만 씨름해서인지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은 없고 닭서리, 참외서리 등 시골이 고향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음직한 추억은 갖고 있습니다. 아참 이런 기억이 나는군요. 그때가 제헌국회땐가 국회의원 선거벽보가 붙어 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내가 왠지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벽보사진 인물의 눈을 찢어버렸어요. 그런데 그것이 들통이 나서 선생님과 교장선생님께 아주 혼난 기억이 나는군요 하하….”

 

명회장은 연안명씨로(지금도 고향에는 2,000여명이 넘는 연안명씨가 살고 있다고 한다. 고향에서 운곡국교(18회)와 청양중(2회), 청양농고(1회)를 졸업한 후 상경, 1954년 서울대 농과대학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국회사무처 농림위원회 사무관으로 (20여년 근무)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후 농수산부 감사관, 농촌진흥청 기획관리관, 농수산부 제1차관보를 거쳐 86년 축협 중앙회장에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전직이 말해주듯 대학의 전공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줄곧 농업과 관계되는 직책만을 맡아서 우리나라의 농정에 깊이 관여하고 농민과 함께 고민하여 왔다.

 

대학시절부터 대학 4-H연구회를 만든 명회장은 농촌 계몽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 당시 미국의 에디슨 대령과 함께 우리나라 4-H운동 초창기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기 했으며, 현재도 한국 4-H구락부 중앙후원회장으로 공직과 별도로 농민운동의 후원자로 일하고 있으며 그 후 농민훈련학교인 복지농도원을 만들어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복지농도원은 대전 도마동에 그 본부를 두고 천안의 병천(우리에게는 류관순 열사가 독립만세를 외쳤던아우네 장터로 더 잘알려져 있다. )에 제2연수원이 있다. 복지농도원의 원훈인 피,땀,눈물,고생은 명회장이 오랜세월 농민운동을 하면서 실천하고 또 몸소 겪어 피부로 느낀 희생정신이요, 농민운동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이자 각오라고 느껴진다.

 

지금 다시 태어나도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명회장은 ‘과부 사정은 홀애비가 안다’고 지금 농민의 아픔과 가려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또 실천 하려는 사람인 듯 했다. 사람은 흙에서부터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며 “영원한 미소란 즉 복된 농촌”이라고 표현 했다. 자유당시절 4-H활동을 위해 외국유학을 꿈꾸었으며 그 당시 4-H운동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당국의 방해로 외유길이 좌절되기도 했던 명회장은 아직은 정치입문을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하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농민운동을 정치적 차원에서 다루기 위해 뜻을 펼쳐 볼 의향도 있음직하다고 기자는 느꼈다. 부인 이복임여사(54)와의 사이에 4남 1녀를 두었다.

지금 고향에는 둘째 형님 명효식씨가 농사를 짓고 있으며 장조카 명광영씨는 운곡농협에 근무하고 있다.

끝으로 청양신문 창간에 대한 바램을 물어보았다. “내 고향 청양에서도 신문이 나왔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고향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길잡이가 되고 지팡이가 되어 공명정대한 보도와 올바른 홍보를 해서 청양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도록 그 선도적 역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축협중앙회장 명의식, 청양의 자랑 칠갑의 인물.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농민운동을 위해 일생을 다 바친사람” 이렇게 그의 기념비가 훗날 우리고향 어디엔가 우뚝 서길 우리 같이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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