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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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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을 아십니까
  • 청양신문
  • 승인 1990.06.28 00:00
  • 호수 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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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면 서정리 장영조 여사

지난 6월 14일 보훈의 달을 맞아 대전일보사 주최 대일보훈대상 자립상을 수상했고, 대전 KBS 대전방송총국 충남 동서남북 프로에 출연, 많은 분들게 감명을 주었던 미망인 장영조여사는 1933년 5월 20일 정산면 광생리에서 태어났다.

 

18세가 되는 1950년 봄 정산면 서정리에 계신 김인태씨에게 출가하여 꿈많은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신혼의 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인 1951년 큰딸이 100일도 넘기기 전에 부군께서는 전선으로 떠나야만 했다. 1년이 지난 후에야 휴가를 와서 함께 지내다 다시 전선으로 떠난 후 2번의 면회에서 잠깐 만난 그 후로 부군은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다.

 

1953년 2월 10일, 강원도 인제에서 폭탄에 의해 전사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당시에는 믿으려 하지도 않고 잘못된 소문이려니 생각하며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부군의 유골이 도착했을땐 눈앞이 깜깜해지고 혼자 살아 갈 생각을 하니 그 자리에서 따라죽고 싶었을 뿐 이었단다. 하지만 자식을 잃고 서러워하는 시부모님과 어린 자식들을 보니 어떻게든 살아야하며 죽을 각오로 살아가면 어떻게 되겠지 맘을먹고 삯바느질을 시작했다 한다.

 

그러나 아들을 잃고 상심해 하시던 시아버님은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어머님마저 병을 얻어 우환이 겹쳐왔다. 그래도 고기는 못사다 드려도 맘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항상 웃는 얼굴로 시중을 들었다 한다.

그러나 어린 자녀들이 그런 어려움을 강담하지 못하고 밥을 안먹고 잠도 안자며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방황 할때는 너무도 안타까워 눈물로 밤을 지샌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한다. 이 모든 아픔과 한을 혼자 몸으로 감당하면서 장영조 여사는 40여년을 바느질을 하며 살아 온 것이다.

 

이제는 3남매(영래, 영옥, 영선)는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고, 정산면 서정리 157-3번지에 건평 240평의 3층건물도 마련했으며 손녀의 재롱을 받아 줄 수 있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소망이 있다면 지난 날 어려운 상황에서 자녀를 가르칠 때, 자신이 너무나 큰 안타까움을 느꼈기에 현재 가정형편이 어려운 한 대학생을 뒷바라지 해주고 있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보다 많은 학생을 돌봐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함께 생활하고 있는 따님 김영옥씨(37세)는 “어느자식이 자기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겠습니까만 저의 어머님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분이십니다. 평생을 자식과 가정을 위해 더나가서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분이지요. 저희가 용기를 잃었을땐 못난 어미지만 너희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으니 너희들은 걱정 하지 마라고 격려해 주십답니다.”

 

마지막 한 말씀을 부탁드리자 장영조 여사님은 “이렇게 살아온 것이 내가 잘나고 훌륭해서 가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지요.” 말씀하면서 비록 민족역사의 비극으로 인해 부군과 헤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하늘나라에서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라도 믿고 있다며 부군의 사진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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