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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은 청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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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은 청양
  • 청양신문
  • 승인 1990.07.26 00:00
  • 호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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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속학 뿌리내린 임동권 박사

“자연속에서 인간의 순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청양은 나의 영원한 고향이며 맑은 내영혼의 샘입니다.”라고 청양을 아끼시는 임동권박사는 한국 민속학 연구에 평생을 바쳐 일제의 탄압으로 황폐화된 전통문화와 민속학을 이땅에 뿌리내리게 한 대학자이다.

 

임박사는 청양군 장평면 분향리 451번지에서 1926년 임철순씨의 3남으로 태어났다. 엄격한 유교가정에서 자랐지만 천진난만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한다. 무밭에서 서리를 하던일, 모래밭에서 씨름판을 벌였던일, 뽕나무밭에서 오디를따먹던일, 까치내 앞산에 갔다가 멧돼지에 놀랐던 일,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며, 각박한 도시생활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을 씻어주는 청량제라고 한다.

 

학창시절 임박사는 문학지망생이었다. 친구들과 밤새워 문학을 토론하기도 하고 불후의명작을 남기는 위대한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다한다. 그러나 대학때 지도교수로 있던 방종현 교수의 권유로 민요 연구를 시작, 민속학적 접근방법을 택하여 거의 독학으로 연구를 했다한다.

 

민속학이란 옛날부터 전승되어온 풍속, 제도, 습관, 신앙등을 조사․기록하여 민족의 전통을 규명하고 민족의 혼을 찾는 학문이라고 설명하며“특히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의 민족성을 말살시키려는 일본인들에의해 우리 전통문화가 말살되고 왜곡되었습니다. 이를 바로 잡고 민족의 참모습을 찾아 민족의 혼을 일깨우겠다는 사명감이 나를 이학문에 더욱 심취하게 한 것 같다.”며 이러한 일념으로 40여년동안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조사하고 기록하고 연구해온 결과, 이제는 부족하지만 한국 민속학이 학문적위치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임박사가 발굴조사해서 지정된 문화재도 중요 무형문화제 8호인 강강술래를 비롯 9호인 은산별신제등 14개가 되고 있으며, 저서도 1961년 ‘한국민요집 I'을 시작으로 한국의 전통과 풍습, 한국세시풍속 연구등 26권이 있다. 1961~1971간 서라벌에대학장을 역임했고, 1967년부터 현재까지 민속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1972년부터 현재까지 중앙대학 교수로 재직,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임박사는 고향땅 청양에 대해“우리 청양은 산으로 둘러싸여 흔히 오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된곳이며,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의 순수성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어쩌면 정신문화의 근원지가 될 수있을 것입니다.”라고 강조하며 청양인은 이점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바른정신을 함양하는데 군민모두가 힘써야 할 것이라며 현재 청양에서 추진되고 있는 향약운동은 현대인들의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며 질서있고 협동하는 도의사회를 구현하는데 획기적인 계기가 될것이라고 한다.

 

임박사는 고향을 떠나있는 것이 부끄러울때도 있다며 고향을 지키고 고향 발전을 위해 애쓰는 분들을 보면 죄송스럽다고 하지만 누구보다도 고향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 89년 12월 15일에는 청양농고 체육관에서 ’향토 문화와 애향심‘에 대해 강연회를 마련, 학생들에게 고향의 의미를 강조했고, 장곡사의 문화재와 칠갑산 도립공원지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었으며, 88년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한 정산면 송학리의 동화제 연구에도 열정을 바쳤다. “요즈음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인간의 본모습을 지키며 자연과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일것이라며 고향의 젊은 후배들은 이점을 잊지말고 열심히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이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7월 25일에는 몽고의 민속을 알아보기위해 중국으로 떠난다는 임박사는 평생을 학문연구에 바쳐 민족의 혼을 깨우쳐준 대학자이자 자랑스런 청양인이며 청양인의 영원한 스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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