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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의 맥 모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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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의 맥 모덕사
  • 청양신문
  • 승인 1990.08.23 00:00
  • 호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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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면암 최익현 선생 모신 사당

매년 4월13일 춘추대의제 지내

 

모덕사(문화제자료 152호)는 조선 고종때 정치가였던 면암 최익현(1833~1906) 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매년 4월13일에 순국선열 면암 최익현선생 항일의거 춘추대의제를 지내며 목면 송암리 17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고종43년(1906)에 청양의 유림들이 사당을 짓기로 뜻을 모아서 1913년에 모덕사를 완성하였으며 춘추로 제향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제를 지내지 못하게 되었으나 해방후 사당을 중수하여 제를지냈다고 한다.  사당은 목조기와집으로 3소슬3문에 팔작으로 되어 있으며, 사당(면암 위패 모신곳), 고택,중화당, 춘추각(장서각, 서책보관소), 영모재, 대의관(유물전시관), 영당(영정 모신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1873년 호조판서로 상소하여 만동묘를 복귀하고 서원을 폐지하는등 대원군의 정책을 반대하여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1876년 강화도에서 일본과의 수호조약이 체결 추진되자 면암은 도끼를 들고 대궐앞에 엎드려 척화의 상소를 하였다. 상소내용을 살펴보면 비록 전통유학적 입장에서 위정척사를 주장하였지만 동시에 문호개방에 따르는 외세의 침입과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간파한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후 한일 통상을 반대하여  흑산도로 정배되었다가 특사를 받아 1894년 공조판서로 임명되고 후에 중추원의관, 의정부찬정을 배명받았으나 사퇴하였다. 면암이 68세 되던 1900년에 본가를 지금의 목면 송암리로 옮기고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때로는 송병선(1836~1905․구한말 충신․우암의9대손․1905년 을사보호 체결시 수일간 단식, 순국자결함)등과 함께 강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05년 5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매국 5적(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을 처형할 것을주장하는 상소를 올렸고 다음해 6월 제자 임병찬과 전라도 태안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왜병과 항전하다 순창에서 체포되어 임병찬 유준근등과 함께 대마도로 유배되었다가 1906년 11월17일 74세에 단식으로 운명하셨다. 그의 시체가 부산항에 도착하여 목면의 본가에 옮겨지는 동안 수많은 백성들이 그의 조상을 통곡하였다 한다. 면암은 1962년 3월1일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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