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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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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양신문
  • 승인 1993.02.01 00:00
  • 호수 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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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밥을 씹으며-박영순(청양유아원 교사)

제각기 독립을 선언하는
한줌 꼭꼭 뭉치면
남남으로 영원한 이별을 삼켰던 그리움처럼
그러나 어느새 끈끈이 엉켜버리고 마는
입안을 색깔없는 그리움으로 풍만하게 하는

새벽닭이 울기 기다려
울타리마다 서너집씩 부려놓던 아버지의
나무지게
남보기 흉할까봐
누구나 갖은 가난을
핑계삼아 촘촘히
아침이면 나뭇짐속에 숨어 살아
마른삭정이 타는 듯 노을이 사그러들고 나면
어둠속에 빛깔없는 한숨으로 밤을 뎁혀
살찌지 못한 사랑을 뎁혀

무슨 여유로 엿을 고랴
얼어 입힌 옷들에 올이 풀리고
질기지 못한 검정 고무신에 송아지 감자처럼
발가락에 흙고물이 묻어나면
천정이며 벽 그을음에 생솔가지 연기에
연기를 핑계로 콧물 눈물 훌쩍이며
엿을 고던 어머니
질긴 삶을 가마솥의 엿처럼 달이고 달여서
반질반질한 어머니의 소매자락

아린 추억들이 누룽지같은
엿밥에 굴려 씹힌다
금싸라기땅 마다하고 산골배미에 발목잡힌 아버지
버릇처럼 지금도 새벽닭 울 시간에
산을 타고 내려와 자랑스런
가난에 울타리를 친다
세월처럼 굽은 허리
마른 한처럼 엿밥이 붙은줄
모르는 어머니
세옷만 입고사는 추억을 위해
끈적끈적한 사랑을 위해
오늘도 엿을 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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