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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 농촌관광 발전 방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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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 농촌관광 발전 방향 2
  • 청양신문
  • 승인 2003.11.17 00:00
  • 호수 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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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풍경 헤치는 5적을 없애자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김성진 책임연구원(관광산업팀장)
[지난호에 이어서 ]
계단식 논도 훌륭한 관광상품
이웃 일본은 섬국가이고 산악국가이기 때문에 산골짜기의 급경사지를 깎아 돌을 쌓고 물을 모아 만든 계단식 논이 많다.
이 계단식 논은 쌀 생산만 하는 곳이 아니다. 홍수와 산사태를 막고 물을 정화하며, 다양한 생물이 살도록 하는 국토 보전의 녹색 댐이다. 그리고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어느 예술가도 흉내낼 수 없는 대지예술(Land Art)이자 문화유산인 것이다.
물론 산옹(山翁)의 눈에는 과혹한 노동과 가난의 상징인 일상 풍경에 불과하겠지만. 계단식 논은 조건 불리지역이다. 급경사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유효 토심이 낮고, 기계화 영농과 용수 확보가 곤란하다. 평지의 논에 비해 경작하고 유지 관리하는데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면서 효율성이 나쁜 이 계단식 논이 휴경지나 폐경지로 방치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후쿠오카시에서 남동쪽으로 약 6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키하 마을에도 계단식 논이 있다. 물론 이 곳도 휴경과 폐경의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나 우키하 정부와 지역주민들은 이 계단식 논을 보전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이 계단식 논의 논두렁에 피안화(彼岸花)라는 다년생 식물을 심어 왔다.
계단식 논에 농사를 지을라치면 물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두더지 같은 설치류 동물이 논두렁에 구멍을 파게 되면 물을 모을 수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논두렁에 심은 피안화 뿌리에서 독성물질이 분비되고 두더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런데 꽃이 피는 9월이면 붉은색 꽃과 황금색 벼가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이 무렵 음악회와 사생대회, 사진대회를 개최하고 ‘우끼하의 계단식 논 탐방(柵田 in 浮羽 探訪)' 행사를 개최하여 많은 도시민들을 마을로 유치한다.
1997년부터는 계단식 논에서 생산된 쌀과 마을의 청정 지하수를 묶어 《퓨어우키하》라는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소득을 높이고 있다.
1998년부터는 계단식 논 1구획 100m2를 40만 원 정도에 도시민에게 분양하는 《계단식 논 오너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98년에는 50구획의 오너를 모집하였는데 213명이 응모하였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한다.
’99년에는 75구획으로 규모를 늘렸다. 분양 받은 도시민들은 가족과 함께 이 곳을 찾아와 주민들과 함께 전통적 방식으로 직접 쌀농사를 짓는다.
마을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면서 소득을 높이고 도시민은 농업과 농촌을 체험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농촌경관과 전통적 농사법이 보전된다. 쓸모 없게 된 땅, 계단식 논도 어떤 아이디어를 내고 어떻게 갈고 닦느냐에 따라서 훌륭한 관광상품이 된다.

농업인이 즐거워야 방문객도 즐겁다
우키하에는 국무암(國武庵)이라는 상호의 민박집이 있다. 이 집은 지은 지 85년 된 전통민가인데, 3대가 함께 살고 있으며 집주인 쿠니타케씨는 지방의회 의원이다. 쿠니타케씨 부부는 1995년부터 민박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전부터 친척과 자녀 친구들이 죽순이나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자주 방문하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의 부인 쿠니타케 히로시씨가 지방정부에서 주선한 유럽 시찰을 가서 할 수 있다는 자심감을 얻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민박업을 시작했다.
이 민박집의 가장 큰 특징을 방문객을 가족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늦게까지 가족사와 마을 이야기를 방문객과 함께 나눈다.
그리고 봄에는 산나물과 산딸기 채취, 여름에는 반딧불이 견학, 모심기, 고구마 심기, 대나무 밥 짓기, 곤충채집, 별자리 관찰, 가을에는 감 서리, 벼 베기, 밤 줍기, 겨울에는 마 채취, 떡 만들기 등 계절마다 독특한 농촌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96년부터는 매년 9월 첫째 토요일 밤에 마당에서 야외 음악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 해에는 전통 대나무피리 연주, '97년에는 째즈 콘서트, '98년에는 쳄발로 콘서트, '99년에는 아프리카 타악기 연주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물론 기획, 티켓제작, 섭외, 홍보, 진행 모두 가족이 직접 한다.
방문객 중에는 그가 생산한 농산물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어 '98년 6월에는 ‘이모(いも: 고구마) 회원'을 조직했다. 연회비 20만 원 정도를 내면 그가 직접 생산한 쌀 10Kg, 포도 2Kg, 감 5Kg, 고구마 5Kg, 죽순, 등나무와 죽세공품 등을 보내준다.
쿠니타케씨 부부는 어디까지나 농사가 주업이며 민박업은 농사일 사이사이에 하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게 되면 자신의 생활도 흐트러지고 방문객도 재미가 없을 것이라며, 결코 가식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농촌 생활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으로 관광객을 매료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농업인 스스로 농촌 생활을 즐겁게 영위해야 그래야 방문객도 즐겁게 지내다 갈 수 있다. 주민이 기뻐하지 않는 생활을 관광객은 즐길 수 있겠는가? 지역민이 자부심을 갖지 않는 자원을 보러 관광객이 오겠는가? 살기 좋은 마을이 최고의 관광지이다.

다음세대가 혜택을 누릴 것이다
일본 오이타현 유후인은 조그만 중산간 온천마을이다. 만 명 정도가 사는 이 마을에 한 해 380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이 방문한다. 주민 한사람당 380명이 방문하는 셈이다.
마을에는 대규모 호텔도 위락시설도 없다. 대신 깨끗하게 보전된 자연환경과 풍요로운 농촌풍경, 천혜의 자연을 외부 자본으로부터 지켜온 자부심과 문화향기가 흐른다. 유후인은 관광을 통해 마을을 활성화시킨 모범 마을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2년 댐 건설 및 호반 관광지 개발 계획이 발표되었다. 수몰되는 토지는 크게 보상된다고 했다.
패전 직후부터 주둔하고 있던 미군과 매춘으로 지탱되던 마을경제였으니 작은 온천마을 전체가 술렁이는 것은 당연했다. 마을의회와 행정은 댐 건설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청년단체와 농업단체가 정면으로 반대했고 결국 계획은 철회되었다.
1972년에는 마을 뒷산에 골프장을 개발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주민들은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고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결국 개발계획은 철회되었지만 개발을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비등했다. 새로운 마을 발전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주민들은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하고 마을의 비전과 전략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유후인의 핵심자원은 온천이다. 온천관광으로 더 유명한 벳부시와 인접하고 있다.
“벳부의 아류가 되지 말자"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환락중심의 남성과 단체 관광객보다는 휴양 중심의 여성과 가족 관광객을 목표로 마을만들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1975년부터 여관경영자들과 농업인들은 촌닭, 논두렁순무, 재래식된장 등을 계약 생산하기 시작했다. 여관경영자들은 신선한 향토요리를 관광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고, 농업인들은 안정된 판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양길에 접어들던 축산업을 진흥하고 마을의 경관을 지키기 위해 《소 한 마리 갖기 운동》과 《쇠고기 먹고 고함지르기 대회》를 개최했다. 유후인산 쇠고기는 일본 최고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영화관 하나 없는 마을, 그러나 이 곳에 영화는 있다'면서 영화제를 개최하고,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의 작은 콘서트'라며 음악제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위기는 1987년 찾아왔다. 중앙정부에서 대기업의 국내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리조트법을 제정하면서 전국적으로 개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유후인은 이미 일본 전역에 널리 알려져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었고, 쾌적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었으니 외부자본에게는 투자 대상 적격이었다.
리조트와 분양별장, 골프장 등 외부자본의 개발계획이 일시적으로 발표되었다.
지가가 급등하였고 주민들이 토지를 파는 일도 잦아졌다.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무질서한 경관이 난립될 것이며, 지금까지 지켜온 마을 이미지가 붕괴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졌다. 개발의 절대 반대가 아닌 난개발의 규제가 필요했다.
이때 ‘윤택한 마을만들기 조례'를 제정하여 슬기롭게 대응했다. 외부자본을 무조건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곳에 온다면 우리들의 동료가 되어주세요"하는 것이 핵심 이념이다.
유후인을 방문하는 관광객 가운데 여성 관광객이 대부분이고, 60% 이상이 재방문객이다. 그래서 유후인의 앞날은 더욱 밝다고 한다. 여성들이 관광산업을 선도하기 때문이다. 영자 가는 곳에 병태도 가기 때문이란다.
유후인은 시설이 아닌 문화와 자연, 인정으로 사람을 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미묘해서 시설에 끌리면 한 번만 가게 되지만 인정에 끌리면 두 번 세 번 가게 되어 있다.
유후인의 마을만들기를 주도했던 미조구찌(溝口)씨는 “30년 전 개발과 보전의 기로에서 보전을 선택할 때, 자신의 세대는 그 결실을 누리지 못할 것이고 아들 손자 세대가 누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이 워낙 스피디한 사회라 자신들이 그 효과를 누리고 있다" 했다.

농촌풍경을 해치는 오적(五賊)
우리나라 마을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형성 되었다.
그래서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참 아름답다. 산을 기대고 자리잡은 마을과 그 앞에 펼쳐진 모내기 끝난 초록 들판이나 추수 전의 황금빛 논, 추수 후의 텅 빈 논도 다 아름답다.
아침 안개에 휘감긴 마을도 아름답고, 석양에 비친 여물 끓이는 연기와 황소 울음 소리도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도둑질하는 다섯 가지 적이 있다.
하나는 규모, 형태, 색채 면에서 마을 전체를 압도하는 ‘나 홀로 아파트'이고, 둘은 들쭉날쭉 어지럽게 늘어선 전신주 행렬이다. 셋은 둥근 산을 가로 자르는 신축 주택의 슬라브형 지붕이고, 넷은 마을의 질서와 맞지 않는 농산물집하장 같은 공동시설이다. 마지막 다섯은 조금 유명하다 싶은 마을에는 꼭 있는 상점보다 더 크고 더 많은 ‘화려한 간판'이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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