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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사 칼럼-도덕 불감증 치료는 기성세대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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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사 칼럼-도덕 불감증 치료는 기성세대가 먼저
  • 청양신문
  • 승인 2000.12.26 00:00
  • 호수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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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운 충·효·예실천운동본부 총재. 사단법인 한국물가협회 회장


없어지면 찾는 것이 상례

경제호황을 누릴 때에는 해외여행에서 흥청망청 ‘달러’를 써서 ‘싹쓸이파’라는 불명예스런 소문까지 났었지만 IMF 시절을 만났을 때에는 ‘달러’를 크게 걱정하고 나라 빚을 갚는다고 첫아이 돌반지까지 갹출했다.
이처럼 ‘달러’가 있을 때에는 아무소리 없었으나 ‘달러’ 보유고에 문제가 생기자 너도나도 모두가 ‘달러, 달러’하고 말들이 많았던 것이 엊그제 같다.
요즈음 사회 각계 각층에서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IMF시대에 ‘달러’를 부르짖는 것처럼 말들이 많아졌다.
이 사회에 도덕이 없어지긴 없어졌나 보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하급자가 상급자를, 상급자가 하급자를, 친구가 친구를 그리고 더욱 크게는 위정자가 국민을, 국민이 위정자를 서로 불신하고 매도하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앗아가는 이런 부도덕한 행태를 서슴치 않고 있다.
이것은 도덕이 없어져 그런 것이므로 도덕을 찾아야겠다고 그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 찾는 방법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논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도덕이 없으니 찾긴 찾아야겠다.
첫아이 돌반지 뿐만 아니라 막내 돌반지까지라도 내놓듯이 도덕을 내놓아야 한다.
IMF 시절에 눈치보며 돌반지 내놓는 것과 달리 우리 5천만 모두가 가슴 가슴에서 내놓아야 한다.
도덕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누가 찾아서 주는 것도 아니다.
도덕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충효예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을 다시 쉬운 말로 풀이한다면 나라사랑, 부모사랑, 이웃사랑, 자연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결국 요즈음은 나라사랑도 없고 부모사랑도 없고 이웃사랑도 없고 자연사랑도 없다는 애기가 된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효도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정보화사회는 글로벌화하여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동방예의지국이란 칭송을 듣는 단일민족이 결국 지역별, 인종별 그리고 역사적인 전통을 지키는 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문제점을 도출시키게 하고 있다.
핵가족화와 이미 오래 된 사회풍속도는 자식들이 어버이를 모실 형편이 안된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어버이들이 자식들에게 어떤 부담을 주지않겠다는 사고방식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에 대하여 신세대들의 반응은 자기자신들도 먼 훗날 그렇게 할 것이라는 태도이다.
필사의 고통인 산고를 겪게 하며 태어났고 태어난 후에는 애지중지 길러주신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로서 당연한 것이며 이것을 효도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방법에 있어서 옛날과 달리 시대에 변천에 따라서인지 도덕을 찾을 정도로 퇴색되어 버린 사례가 종종 신문지상을 더럽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단지 효도란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형태로 보인다고 어른스럽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예를들면 효도하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물질적인 방법과 정신적인 방법이 있다.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요즘 젊은 층들은 물질적인 효도를 하면 다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물질적인 효도보다 정신적인 효도가 더 절실하다고 보겠다.
냉난방장치가 잘 되어있는 맨션아파트가 싫다고 하는 노인, 그 노인에게 무엇이 부족하냐고 따지는 젊은 자식 이야기가 TV드라마로 방영되는 것을 보며 남의 일같이 여길 수가 없다.
때문에 옛 성현들은 “도덕이란 자연발생적으로 생겼고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으며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서 전해져 내려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어제의 충효예
충청도에는 많은 충절의사들이 많지만 충남 아산 현충사에는 이땅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우리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선친을 그리워하는 귀절도 많으며 홀로 되신 모친은 여수근방의 고음천에 모셔놓고 지성을 다해 봉양했다.
그러던 중 원균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게 되어 모친은 고향으로 배를 타고 돌아오던 중 별세하였다. 곧바로 백의종군의 길을 떠나게 되어 모친상을 치르지 못한 것을 일생의 한으로 여기었다.
이순신 장군은 형제간과 가족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백성과 부하장병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였고 상관에 대한 존경 또한 유별났다.
때문에 이순신 장군을 충효예에 있어서 첫 번째 손가락을 꼽는데에 인색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 집을 지키며 살림만 해온 이순신 장군의 부인 맹씨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인은 이순신 장군이 남북으로 군무에 바빠서 집안을 비웠어도 시부모를 잘 공경하고 3남 1녀의 자식을 잘 키우며 가사를 잘 돌보아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부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이 부인은 도덕이나 충효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을 차근차근 들여도보면 무엇인가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다.
이것은 그 시대에 충효예이며 오늘날의 충효예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오늘의 충효예
세계 어느 민족도 들어보지 못한‘동방예의지국’이란 소리를 우리는 다시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것은 이 시대가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명제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 부인은 자기의 분수를 알고 열심히 자기의 위치를 지키었다.
남편이 안심하고 국가에 충성하도록 부인으로서 뒷바라지를 충실히 했으므로 충효예의 ‘나라사랑’을 시부모에게는 며느리로서 잘 봉양하고 자식에게는 어머니로서 잘 키웠으므로 충효예의‘부모사랑’으로 가내제절을 잘 돌보았다는 것은 친인척과 이웃들과의 예절을 잘 지키었다는 뜻이기도하여 ‘이웃사랑’을 열심히 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충청도를 충절의 고장이라고 하며 그 이름 못지않게 이 충청동의 민초들은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켰거나 또는 여타 의병대에 참여하여 왜군을 무찌르며 순직하였다.
이 선열들의 무덤이 금산에 칠백의총으로 있고 홍성에 구백의총으로 있는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이 뿐만 아니라 금세기 초반 일제치하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유관순을 비롯하여 윤봉길의사 등도 충청도 출신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충’의 실천이 되며 ‘효’의 첩경이 되며 ‘예’의 바른 길이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공명정대하지 않은 방법 혹은 비정상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무엇이든지 성사시키려고 하는 그 생각 자체가 불충이며 불효이며 부정인 것이다.
오늘날 이 왜곡된 사고방식과 형태의 만연으로 그것을 당연시하는 나이어린 젊은 층들이 자기 존재의 가치관에 대하여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심히 우려되는 바 크다 하겠다.
우리는 인간의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차세대에게 몸소 보여 주고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의 각성이 필요하고 지금 찾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급선무인지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때인 것이다.
충청도를 일컬어 청풍명월이라고 칭송하는 것은 충과 효와 예의 실천적 본이 되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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