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7 17:12 (수)
초대시단 - 류지남
상태바
초대시단 - 류지남
  • 청양신문
  • 승인 2000.12.26 00:00
  • 호수 39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끔 설거지도 한다’

밥그릇이 참 이쁘다

씽크대 앞에 엉거주춤 서서
가끔씩 설거지를 하다 보면
한바탕 순결한 전쟁을 끝내고
개수대 위에서 하얀 숨결 고르고 있는
목숨 가까운 삶의 무기들이 정겹다

무엇인가를 씻어 갈무리하는 건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는 것,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밥그릇만한 풍요를 흥얼거리며
거품 속의 뽀얀 살결들을 만지작거리다
쏟아지는 찬물에 몸을 맡기면
비늘 반짝이며 다시 살아나는
저 새하얀 눈빛 눈빛들

한그릇의 밥을 위해 싸우는 일은
끝내 슬프고 아름답다


(시집 ‘내 몸의 봄’ 중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