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이 참 이쁘다
씽크대 앞에 엉거주춤 서서
가끔씩 설거지를 하다 보면
한바탕 순결한 전쟁을 끝내고
개수대 위에서 하얀 숨결 고르고 있는
목숨 가까운 삶의 무기들이 정겹다
무엇인가를 씻어 갈무리하는 건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는 것,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밥그릇만한 풍요를 흥얼거리며
거품 속의 뽀얀 살결들을 만지작거리다
쏟아지는 찬물에 몸을 맡기면
비늘 반짝이며 다시 살아나는
저 새하얀 눈빛 눈빛들
한그릇의 밥을 위해 싸우는 일은
끝내 슬프고 아름답다
(시집 ‘내 몸의 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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