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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가족등반대회 등반기 공모 최우수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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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가족등반대회 등반기 공모 최우수작품
  • 청양신문
  • 승인 2000.11.20 00:00
  • 호수 3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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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미 욱 (청양읍 읍내리 부전빌라)
뜻 깊은 하루
허 미 욱 (청양읍 읍내리 부전빌라)

처음 참가하는 가족등반대회여서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깨우며 분주히 움직인다. 비님이 오시시려 하늘엔 회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희뿌옇다. “비가 오면 안되는데…”
번호판을 받아들고 집결장소로 모여든다. 쌀쌀한 날씨에 모두들 종종걸음으로 출발 시작을 기다린다.
“자, 등수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는 1등만 하자구요”라는 남편의 너스레에 주변은 웃음바다가 된다.
이제 3살인 지원이는 초입부터 “힘들어, 안아주세요”하며 한쪽 다리를 붙잡고 늘어진다. 곧 아빠의 목마를 타고는 싱글벙글.
칠갑산산장에 닿기도 전에 일행은 보이지도 않고 울긋불긋한 단풍들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2주 전에 칠갑산에 들렀을 때만 해도 겨우 발끝을 간지럽힐 정도로 물들었더니 이젠 색색의 단풍들이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6살 정현이도 점점 지치는가 보다. 언제까지 계속 올라가냐며 연신 묻는다.
다행히 아빠와 낙엽들을 끌어 모았다. 높이 차 올리는 놀이를 하더니 한결 기운이 나는 가 보다. 지원이는 요즘 한창 즐겨 부르는 ‘악어떼’와 ‘산중호걸’을 부르며 작은 발걸음을 내디딘다. 아직 설익은 발음이 앙징맞다.
대회에 참여한 가족 말고도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산에 오르는 가족들이 많다. 참 보기 좋다.
평탄한 산책로가 끝나고 로프(밧줄)가 보이면서 가파른 곳이 나온다. 밧줄이 너무 굵어 자기 손에 안 맞는다고 툴툴거리며 오르는 정현이, 그래도 제법 잘 오른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온 등성이를 정현이에게 보여 주자 사뭇 놀라며 뿌듯해 한다. 구비구비 뻗어내리는 칠갑산 산줄기. 산세가 완만하고 정상도 널찍해 더욱 넉넉해 보인다.
아, 그러고보니 언제 나왔는지 햇님이 환한 햇살을 보내고 있다. 환한 햇살에 비친 단풍이 더 예뻐 보인다.
장곡사로 넘어가는 길에 정현이의 발이 풀렸는가 보다. 행여 미끄러질세라 손을 단단히 잡고 내려간다. 비탈에 선 나무들이 마치 벽타기를 하는 곡예사 같다.
앞서 가던 정현이가 뒤를 돌아보며 “엄마, 저기 음료수 병 버렸네. 왜 휴지통에 안 버리고 여기에다 버렸죠?”
미쳐 보지 못했는데 정말 음료수 병, 사탕 껍질들이 간간이 뒹굴고 있다. 아이들이 먹고 버린 듯 한데 함께 온 부모님의 책임이 크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선물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으로 자연을 오염시킨다. 자신의 쓰레기를 되가져가는 작은 실천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교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지난 봄 끊이지 않았던 산불이 떠오르며, 행여나 자연이 준 이 아름다운 선물을 ‘나 하나 쯤이야’하는 개인의 이기심으로 불태워 버리진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가족이 가장 뒤처진 것을 아시는지 마주오는 등산객들이 “7번 화이팅!”을 외쳐준다.
어렵게 어렵게 4시간여의 산행끝에 종점에 도착. 이미 뒤풀이가 한창이다.
누구보다 정현이에게는 뜻 깊은 산행이었다. 혼자 힘으로 완주를 했으니.
갑자기 아이가 훌쩍 자란 느낌이다.
오늘 저녁에는 정현이의 칠갑산 등반 완주를 축하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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