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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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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 자리에
  • 청양신문
  • 승인 2000.10.23 00:00
  • 호수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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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초등학교 김 은 숙 자모
청양교육청 주최 제4회 이웃사랑·효 실천 학부모 백일장 장원작품
대치초등학교 김 은 숙 자모

부모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포근함과 당신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나는 7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어머니께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식들의 공부를 걱정 하시며 광산에 취직 하셨다.
“내가 못배워 답답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야” 하시며 자식들은 무슨일을 해서라도 가르치시겠다는 신념아래 어두운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신 것이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광산일에 집안일, 농사일까지 마음놓고 쉬어 보시지 못한 어머니!
일을 갔다 오시면 새까만 얼굴이 얼마나 안쓰러웠던지 가래침만 받아도 새까만 연탄재가 섞여 나오곤 했었다.
그렇게도 힘든 일을 하시며 어려운 표정을 짓지 않으시고 “난 너희들만 보면 좋다” 하시던 어머니, 당신의 희생으로… 우리 7남매는 고등학교며 대학교까지 다니게 되었습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께 저는 언제나 걱정을 끼쳐 드리는 딸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어깨가 아파 사진촬영을 하였다가 우연히 결핵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니가 잘못되면 나는 못산다. 들판에 있는 벼도 때를 알고 여물어 가는데 너는 아직 피어나지도 않았는데…” 하시며 울부짖으시던 아버지!
학교갔다 늦게 오더라도 식사를 하시지 않고 기다리시던 아버지, “난 너와 함께 먹으려고 안먹었다” 하시며 병에는 개고기가 좋다고 먹으라시면 저는 “못먹어요” 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내가 고기를 먹을테니 너는 국물만이라도 눈 꼭 감고 먹으라”시기에 억지로 먹었던 일, 저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낫게 되었답니다.
저에게 사랑만 베푸시던 어머니께서는 평상시에 혈압이 높으셨는데 89년 4월 10일 밖에 나가 일을 하시다 뇌출혈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큰아이를 임신한 중이라 항상 조심을 했어야 했는데 부모님의 병간호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제가 어머니의 곁에 있어야만 했지요.
제게는 조금이라도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일이라는 병원생활에서 어머니의 소변, 대변을 받아야만 했는데도 저는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에 큰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항상 걱정이 되셨는지 “이제 그만 집에 가라”시며 걱정하시는 어머니, 몸이 41㎏에서 68㎏까지 임신중독증에 걸려버린 내게 신경이 쓰이셨던건 당연하셨겠지요.
이제는 부모님의 건강이 걱정이 됩니다.
백발이 되신 아버지 몸이 아프실텐데 병원에 가시자면 자식이 걱정할까봐 아프지 않다고 하시는 어머니, 저희 7남매는 부모님이 곁에 계시다는 것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은아빠의 거듭된 실패로 마음만 아프게 해드렸던 딸이 이제는 어머니, 아버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제는 저희도 지은아빠 하는 일 잘 되고, 올해 고추 농사도 풍년농사를 지었습니다.
“엄마 힘드실까봐 설겆이 해놨어요”하는 예쁜 딸, “엄마 힘드시죠, 제가 어깨 주물러 드릴께요”하는 잘생긴 아들, “오늘 힘들었지”하며 다정히 말해주는 남편.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 있어 힘든 일이 있어도 어머니처럼 헤쳐 나갈 힘이 있습니다.
저도 이제 약한 여자이기 이전에 강한 어머니이고 싶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하게 늘 옆에만 있어 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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