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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초대작가 수필 ; ‘누님의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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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초대작가 수필 ; ‘누님의 비빔밥’
  • 청양신문
  • 승인 2000.10.23 00:00
  • 호수 3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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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청양 장평 출신인 필자는 수필작가로 등단한 현직 경찰관으로 최근에 산문집 <우리 동네 교장선생님>을 출간한 바 있으며, 수필문학 홈페이지 ‘청촌수필’(http://my.dreamwiz.com/ysw2350)도 운영하고 있다(연락처: 019-422-7861).
콩밭 매던 내 누님을 떠올리며…
윤 승 원 (수필가. 대전북부경찰서 정보과 재직중. 장평 중추리출신)

나는 밥을 비벼 먹을 때마다 누님 생각이 난다.
그 옛날 시골에서 어렵게 살 때, 누님은 동생들의 밥을 곧잘 비벼주었다.
가지나물, 호박나물, 열무 김치 등을 넣은 다음 고추장을 듬뿍 넣어 보리밥을 썩썩 비빈다.
우리 형제들은 소반에 둘러앉아 누님이 비벼주는 밥을 먹으면서 ‘꿀맛’이라고 했다.
궁핍했던 시절에는 무슨 음식이든 다 꿀맛이었지만 누님의 비빔밥이 유난히 꿀맛이었던 그 비결을 난 아직도 모른다.
형이나 내가 밥을 비벼 놓으면 그런 맛이 나지 않았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큰 양푼에 밥을 사발 째 부어 놓고 누님의 손을 기다린다.
“밥 다 식겠다. 어서들 비비지 않고 왜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어?” 누님은 동생들의 의중을 다 알면서도 짐짓 한 마디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이구동성으로 “누이가 비벼야 맛이 있거든!” 했다.

누님이 흘린 남모르는 눈물
동생들로부터 ‘비빕밥 특허권’을 인정받은 누님은 음식 솜씨뿐 아니라, 바느질 솜씨도 좋았다.
아버지 두루마기며, 동생들의 옷가지도 손수지어 입혔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은 타고 난 재주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누님은 본디 왼손잡이로 태어났으나, 완고한 아버지는 여성의 왼손잡이를 용납치 않으셨다.
그 엄한 책망에 주눅이 들어 손재주를 펼쳐 보이기는커녕 남모르는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내 어릴 적, 누님은 상급학교 진학 대신 20여리 떨어진 양재학원에 다녔다.
당시 향학열에 불타는 시골 처녀들의 유일한 배움터였다.
오빠들은 도회지 학교에 진학했지만, 딸자식은 기술학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복 받은 집안의 자녀라고 했다.
그래도 누님은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야속하게 여기지 않았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일 따름이었다.

콩밭 매던 누님의 아름다운 모습
당시 누님은 매일같이 밭에서 살았다.
내 고향 청양의 ‘부수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길다란 밭에는 으레 콩을 심었다.
<칠갑산>이라는 유행가 가사 때문에 요즈음은 ‘콩밭 매는 아낙네’가 새삼 내 고향의 촌부상(村婦像)이 되어버렸으나, 나의 유년시절 콩밭은 그야말로 삶의 터전이었다.
콩 뿐만이 아니라, 각종 다양한 농작물을 심어놓아 아기자기한 만물상과도 같았다.
콩밭 이랑사이에는 연한 열무가 무성히 자랐고, 그 옆 가장자리에는 고구마도 심었다.
또 한 쪽으로는 참깨밭과 목화밭을 만들었고, 길쭉한 수수대도 밭이랑마다 운치 있게 자랐다.
온갖 먹을거리가 나오는 생활의 터전.
그 밭이랑에 엎드려 구슬땀 흘리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꿈을 꾸기도 했다.
누님은 온종일 밭일을 하고 어스름이 깔리면 한 손에는 호미를, 또 한 손에는 아버지가 드셨던 빈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머리에 인 광주리 속에는 콩밭 이랑에서 솎아낸 열무 몇 단이 들어 있었다.
이러한 누님의 옛 모습이 지금도 나의 눈에는 선하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내 누님에 대한 나의 인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오늘날의 도시 생활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옛날 정을 듬뿍 담아 비벼주었던 누님의 그 독특한 비빔밥의 맛을 잊을 수 없고, 손수 옷을 지어 다림질해 입혀 주었던 누님의 그 남다른 손재주도 존경하고 있다.
“가르쳤으면 적어도 도의원은 해 먹을 재주여-어” 생전에 어머니께서 도회지로 진학시키지 못한 딸자식을 두고 늘 혼자소리로 한탄하시던 말씀이었다.

서운하고 쓸쓸해 뵈는 오늘날 우리 누님의 얼굴
그런데 오늘 날 나는 누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이가 날더러 조선시대 여자란다. 운전도 하지 못하고 인터넷도 하지 못한다고, 세상을 정말 재미없게 사는 여자래.”
씁쓸한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누님의 서운한 기색이 내 가슴에 충격처럼 자리하고 있다.
소박하게 집안에서 살림만 하는 우리 누님더러 운전도 할 줄 모르니 재미없게 사는 여자라고 한다면 착각이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한 세월을 희생적으로 살아오면서 이제 귀여운 손자까지 보았고, 남부럽지 않게 성장한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고 보람되게 살아가면 여자로서 성공한 셈이지, 시대가 변했는데 남들 다하는 인터넷도, 운전도 못한다고 조선시대 여인이라고 하는 이가 이 세상에 있다면 동생은 한없이 서운하다.
야간에 음주운전 단속을 종종 나가게 되는 나는 여성들의 음주운전이 날로 늘고 있다는 사실에 증오감을 갖는다.
어떤 여자는 술로 우울증을 다스린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해 허둥지둥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우울증이란 사치스런 고급 병이란 걸 모르고 있다.
직업상 인터넷 검색이 생활의 일부처럼 되어 버린 나는 각종 사이트를 살펴보면서, 이른 바 철없는 10대의 정서에 편승해서 분별력 없는 말장난이나 불필요한 언어 공해를 유발하는 이들을 단 한 번도 부러워 해 본 적이 없다.

우리 누님을 ‘조선시대 여인’이라한들 어떠랴
이제 큰 볼일 없이 선그라스 끼고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여자들을 부러워하는 시대는 갔다.
할 일이 없어 밤낮으로 사이버공간이나 헤매고 다니는 소위 인터넷 중독자들을 부러워할 만치 우리 누님은 한가롭지 않다.
그저 열무김치 넣고 밥 잘 비벼주던 순박한 우리 누님의 손맛이면 비록 조선시대 여인이라고 해도 이 동생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다.

필자소개; 청양 장평 출신인 필자는 수필작가로 등단한 현직 경찰관으로 최근에 산문집 <우리 동네 교장선생님>을 출간한 바 있으며, 수필문학 홈페이지 ‘청촌수필’(http://my.dreamwiz.com/ysw2350)도 운영하고 있다(연락처: 019-422-7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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